[르포]채식만두부터 병원비까지…기본소득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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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걱정이 사라진 4개월

나비훨훨지역아동센터(이하 아동센터)의 ‘아동센터 퇴소아동 자립지원사업(이하 자립지원사업)’ 사업대상에 선정 돼 30만원씩 4개월간 지원금을 받게 됐다. 안내받은 자립지원사업 프로그램 계획서에는 ‘매달 조건 없이 30만 원씩 지급해서, 통제가 아닌 상호 존중을 통한 자립의 기회로 삼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조건도 통제도 없는 지원은 낯선 경험이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작년부터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이하 재난지원금)을 지원했지만, 이는 개인에게 주는 형태가 아닌 가구를 단위로 세대주에 지급하는 형태였다.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재난지원금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은 집을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개별지급이 아닌 세대주인 가장에 지급해 가족 안의 권력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직접지급(보편성),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한다는 점(무조건성),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점(개별성) 측면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다르다.

아동센터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퇴소 청소년이라고 생각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삶의 쉼표 같은 역할’을 하고자 자립지원사업을 계획했다. 아동센터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30만 원씩 5명의 퇴소청소년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4개월간 받은 지원금을 통해 기본소득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너를 지원하려고 해”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동센터를 다녔다. 아동센터를 졸업한 후에도 종종 봉사하러 갔지만 지난 1월 아동센터 선생님께 받은 연락은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다인아 퇴소아동 자립지원사업을 하는데, 너를 지원하려고 해” 

그동안 교외 장학금을 받기 위해 11장 넘는 서류를 준비하기를 여러 번, 떨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나를 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은 고맙고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 동시에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일상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재고 따졌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여유는 곳간에서 나온다

지원금이 입금되고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동센터 정기후원 신청이었다. 그 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파업농성 본부인 공공운수에 후원을 했다. 힘들었을 때 나를 도와줬던 친구들에게 밥도 사고, 부모님께 잠옷세트를 선물해드렸다. 지원금으로 이렇게 선물을 사도 되는지 망설였지만, 아동센터는 지원금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항상 여윳돈이 생기면 주위에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여윳돈이 생기면 저축하거나 자기계발비용으로 지출했다. 지원금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망설임을 실행할 수 있게 나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지불하고 나면 40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원금을 받는다고 분기별로 다가오는 걱정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의 선택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식탁에서 나타났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모든 요리의 바탕이 되는 파와 양파가격이 금값이 되면서 주로 콘플레이크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고 그동안 부담스러워 사지 못했던 채식 만두, 아보카도, 토마토 그리고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기숙사에서 친구와 나눠 먹은 그린티 하겐다즈는 아주 맛있었다.

표고우엉밥.
아보카도 샌드위치.
유부초밥.

아프다 아파 현대인! 무섭다 무서워 병원비!

위염, 장염은 달고 살았지만, 저번 달 목 디스크(New!)를 얻었다. 아무래도 비대면 수업 이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증가해 생긴 것 같다. ‘자면 낫겠지’ 하며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했지만, 안압이 오르자 두통이 생기고 몸통으로 통증이 이어져 결국 통증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는 목 디스크라는 진단을 내렸다. 목이 일자라 뼈마디가 붙어 통증이 생기는 거라는 설명을 덧붙이고는 도수 치료를 받고 가라고 했다. 

도수치료는 30분에 9만 5천 원이었다. 병원비와 약값을 지불하고 나니 11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활비 통장에 남은 잔고가 아찔했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과 식재료를 생각하며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던 중, 은행 앱에서 띵동하고 ‘나비훨훨지역아동센터에서 30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는 알람이 왔다. 내가 사회적 안전망 안에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토익보단 피아노

피아노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잠깐 중학생 때 잠깐 배운 피아노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피아노는 취미고, 수입원이 없는 나에게 한 달에 15만 원인 수업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지원금이 들어오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토익학원과 피아노 학원 둘 중 어느 곳을 등록할지 고민했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들에 밀려 뒷순위가 됐다. 이번 지원금을 받고 해야 하는 토익공부대신 하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인생의 최전목마’를 연습 중이다. 

‘곰 세 마리’로 시작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을 마지막으로 2개월간의 피아노 여정은 끝이 났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가야 해서 버겁기도 했지만 똥땅똥땅 피아노를 치는 건 즐거웠다. 피아노 실력도 많이 안정됐다고 선생님이 칭찬해주었다. 일주일에 세 번. 20분 걸어 피아노 학원에 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상당히 위안이 됐다.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지난 연주보다 지금의 실수 없는 연주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오롯이 피아노를 친다는 행위에만 집중해서 1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 귀한 경험이었다. 

반갑다 친구야!

아동센터는 사업기간 동안 퇴소 청소년들과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했다. 퇴소 청소년들은 같이 아동센터를 다녔던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동센터 친구들은 농사를 짓는 친구도 있고, 취직을 준비하는 친구, 보험사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자립지원사업은 어떤 의무도 요구하지 않지만 지원금을 받는 4개월 사이에 5명의 대상자 중 2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마지막 모임에서 우리가 기본소득을 받았던 경험과 느낌을 에세이로 써서 책을 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 같다. ‘자립이란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와 지역사회자원을 잘 활용하며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독립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립지원사업계획서에 적혀 있던 문구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연결된 자립의 방식을 찾아가고자 한다. 

개인으로 호명된 순간

처음 지원금을 받을 때는 ‘내가 받아도 될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의 심정은 ‘받아보니 좋더라’이다. 이번 지원금을 받으며 나로서 온전히 호명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교내 장학금 혹은 교외 장학금 지원서에는 불행을 팔았다. 시혜받는 존재가 되어야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지원금은 미사여구를 붙인 개인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개인을 있는 그대로 호명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은 아직 실험단계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특정 연령대의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한정했고, 재난지원금은 개별지급이 아닌 가구당 세대주에 지급하는 형식이었다. 이번 아동센터의 자립지원사업 또한 기본소득의 성격은 띠고 있지만 기본소득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고민과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실험장이다. 아동센터는 이후에도 퇴소아동 지원사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복지제도의 틈새에서 다양한 공론장이 열리길 바란다. 

취재, 사진 | 신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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