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고]하얀 천이랑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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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갈 때, 쌀쌀해진 밤공기에 인적이 드문 느티. 그 계절에 나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스로 정한 울타리에서 나와 처음으로 직접 내 운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용기를 낼 때였다. 열세 개의 학과가 조화롭게 각자의 일들을 멋있게 벌일 때 입학했던 나는 그것이 언제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줄 알았다. 입학 후 내가 처음으로 만난 성공회대는 예비대학에 참여하시겠냐고 물어보던 학생회의 전화였고, 개강 후에는 이곳저곳을 바삐 오가며 학생사회를 꾸려가기 위해 애쓰는 그런 사람들로 학교가 가득 차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반면 낯을 많이 가리고 숫기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OUTGOING 해야 하는 조직에서 생동하기 어려웠고 과 학생회 집행부를 겨우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끈끈한 동아리 생활에 푹 빠지게 되었다.

술, PC방, 늦잠, 자체 공강이 나의 삶을 지배하던 어느 날이었다. ‘프라임 사업’, ‘학과 통폐합’ 같은 말들이 느티를 배회했고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학생회는 뭘 하는 거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휴학한 친구들은 ‘그래서 나 학교 돌아갈 때 우리 과 없어지는 거야?’라며 물어봤다. 나는 나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 왔는데, 학생회도 했고 동아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리고 무지는 곧 부끄러움으로 찾아왔다.

그래서 시작했다. 뒤에 남아서 무책임하게 바라보는 방관자가 되기 싫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큰일을 벌일 생각을 하니 들뜬 마음에 처음 만나는 학우들에게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학생회와 나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2020년을 끝으로 학생회 임기를 공식적으로 마친지 두 달이 지난 지금 글을 쓰기 위해 복기해보니 참 기분이 이상하다. 3년을 고군분투하며 지냈기에 아무런 책임도 직책도 없는 자유의 상태가 어색하기도 하다. 돌아보니 그렇다. 학생회 활동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생고생을 하는 것’, ‘대가도 없는 봉사를 하는 것’, ‘명예 혹은 지위를 얻으려 하는 것’ 등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학생회의 본질은 ‘자신의 공간’을 ‘책임’지고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이 학생회가 건강하게 꾸려가고자 하는 것은 곧 ‘학생사회’이며 반대로 학생사회가 단단해야 그 공간을 책임질 학생회도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단단한 학생사회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마치 큰 강이 우리 앞에 있어 배를 만들고 배를 띄워 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학생회라면 그 배는 학생사회, 그 배를 타고 건너는 이는 학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공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래봤자’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모든 수고와 시간이 학생사회라는 배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어떤 학우도 배제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뚜벅뚜벅 우직한 발걸음으로 걷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모인 이 공간에서 변화라는 상상, 그보다도 그 변화를 내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뜨거운 상상을 한 번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속한 이 공간을 더 멋있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글 | 여현주(사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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