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종이 없는 삶, 원시시대일까, 미래시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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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일 간 종이 없이 살아봤다

‘기후 위기 시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 영수증을 발급하는 것과 같이 환경을 고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종이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대기업과 정부가 종이 사용을 줄이고 있다. SSG, 현대백화점, 알라딘 등은 전자 영수증 발행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환경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8월 13개 대형유통업체와 ‘종이 영수증 없애기’ 협약식을 진행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디지털 정부혁신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종이 고지서를 전자화해 모바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자 영수증 발급, 창구전자 문서 시스템 구축과 같은 행보는 환경보호 및 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종이 없는 삶은 가능한 것일까? 종이 사용을 줄이는 개인적 실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해보았다.

일상 속 종이는 생각보다 쉽게 대체 가능했다. 현금은 카드로, 종이 문서는 전자 문서로 대체할 수 있었고 책 또한 전자책으로 대신 볼 수 있었다.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상용화된 방법이다. 오히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현금보다 교통 카드로 지불하는 것이 더 저렴하기도 하다. 월말정산을 할 때도 현금을 사용하면 내가 어디에 얼마나 지출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카드만 사용하니 지출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정리하기 편했다.

더는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낼 필요 없다

시장에 갈 때 카드 사용이 가능할까 조금 걱정하기도 했다. 시장 특성상 카드 결제는 받지 않고 현금만 받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은 현금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금융서비스의 영향으로 가게 곳곳에는 계좌번호를 적어놓은 종이를 배치해뒀다. 현금이 없다면 계좌이체로 결제할 수 있었다.

내 손에 서재가 있다

책도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구매하거나 대여해서 읽었다. 이전까지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느낌을 좋아했고, 전자책은 몰입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자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웹툰, 웹소설, 인터넷 뉴스 등을 자주 접했던 탓인지 전자기기를 통해 보는 책은 생각보다 잘 읽혔다. 수업교재를 구매할 때 전자책이 있는 교재라면 종이책과 전자책, 두 종류 중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전자책 교재를 구매했다.

전자도서관을 활용해 전자책을 읽어본 경험은 더러 있었지만, 구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은 구매까지의 과정이 빠르게 이뤄졌다. 평소라면 서점에 방문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택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책을 구매해야 했다. 그러나 전자책은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필요 없이 3분 만에 구매 가능했다.

책 목록을 관리하거나 내용 중 내가 원하는 부분을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종이책보다 용이했다. 또한 책의 재고를 신경 써야 하는 서점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그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종이책보다 쉽게 살 수 있고 저렴한 경우도 많았다. 대여한 책의 경우 반납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동으로 반납되는 점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책이 전자책으로 존재할 때만 살 수 있었다. 전자책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모든 책이 전자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종이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되팔 수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어깨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개였다

종이를 전자문서로 대체하니 평소 들고 다니는 물건의 수와 가방의 크기가 달라졌다. 용도별로 들고 다니던 필통 안의 필기구들은 애플펜슬 하나로, 책과 문서는 아이패드로 대체됐다. 특히 교재의 경우 500장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아 평소 들고 다닐 때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수업이 2개 이상 연속해서 진행된다면 두꺼운 교재를 여러 권 들고 수업에 참여해야 했다. 이번 학기는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어 교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책가방에 교재 여러 권을 짊어 메고 다니던 지난 학기의 모습을 떠올리니 어깨가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전자책으로 교재를 구매하고 난 뒤에는 대면 강의가 시행되더라도 이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수업이든 파우치에 아이패드, 애플펜슬, 키보드만 넣고 다니면 되니 교재를 깜빡하고 두고 올 일 또한 없어졌다.

더불어 종이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50장이 넘는 강의자료를 그대로 출력하지 않고, 아이패드로 필기하며 정리했더니 20장으로 줄었다. 공부할 때에도 편리하고 환경적으로도 양면 인쇄 기준 한 강의당 15장 내외의 종이를 아낄 수 있었다.

△456g의 아이패드에 수십 권의 책이 들어있다.

종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자 영수증을 도입한 기업의 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카드로 결제하면 자동으로 영수증이 나오는 포스기를 사용하는 가게는 많았다. 내가 영수증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이미 출력된 종이는 포스기에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더불어 대면 강의가 진행됐다면 과제와 자료들을 출력해야 했기에 완벽한 종이 대체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패드로 보는 전자 문서는 종이 느낌과 달랐다. 전자기기로 종이 문서를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 2달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몰입력은 종이가 더 높았다. 종이에 적거나 출력하고 읽는 삶에 익숙한 탓이다. 지금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때 전자기기보단 종이와 볼펜에 자연스레 손이 간다.

종이의 사용을 줄인 만큼 전자기기의 사용량은 크게 늘었다. 휴게시간뿐만 아니라 과제나 기사를 작성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시간도 전자기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패드의 *스크린 타임이 하루 평균 10시간 44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패드만 10시간이 넘는 스크린 타임이 나왔다는 것은 높은 수치이다. 핸드폰의 스크린 타임과 합친다면 15시간을 웃돈다. 전자기기를 장시간 이용해서인지 눈이 쉽게 건조해졌고 시력 저하도 걱정됐다. 실제로 강남드림성모안과 정충기 원장은 헬스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오래 보면 깜박임의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그로 인해 안구표면이 심하게 마르게 된다. 이로 인해 일상적인 두통이나 시린 증상을 호소할 수 있으며 눈을 편하게 뜨지 못하고 항상 찡그린 모습을 보이게 된다”라며 스마트폰의 장기간 이용이 안구건조증과 노안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종이의 대체재는 모두에게 평등한 수단이 아니었다. 종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전자기기가 주목받고 있지만, 전자기기 구매는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경제적 여건은 디지털 격차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디지털 소외로 이어진다. 또한 전자기기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전자기기 사용 경험이 없는 것이 디지털 소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노인층을 중심으로 디지털 소외 문제가 발생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을 제외한 모바일뱅킹 이용률은 30대가 87.2%로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60대는 18.7%, 70대 이상은 6.3%에 그쳤다. 원격교육과 비대면 의료서비스 등이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고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종이 영수증의 연간 발급 비용만 약 119억 원에 이르고 쓰레기 배출량은 1000t이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종이 영수증 없애기’ 협약식 당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전자 문서 사용으로 ‘종이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음으로 우리가 관심과 노력을 조금만 기울이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종이 영수증 발생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이의 대체는 진행 중인 이야기이다.

종이 사용을 줄이려고 마음을 먹은 후 나의 생활을 돌아보니 평소 나의 종이 사용량은 이미 생각보다 적었다. 종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내 삶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많은 것은 대체되어있었고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 쓸 부분뿐이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며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적응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종이 사용을 줄이자는 사회 전반적인 움직임과 대체 가능한 기술도 존재하는 이 시점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스크린 타임: 기기 사용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기본 기능이다.

글 | 김승현 기자
사진| 류영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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