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대 위의 젠더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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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친구와 함께 대학로의 어느 *코믹연극을 보러 갔었다. 누적 관객 수가 630만 명이 넘어 ‘국민연극’이라고도 불리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나는 한순간도 웃을 수 없었다. 해당 연극이 성 소수자 비하와 여성 혐오를 주 개그 요소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호모!”라는 대사가 반복될 때마다 사방에서 터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친구와 나는 **‘프로 불편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연극은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에 비해 젠더 감수성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지금 듣기에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는 혐오 발언이 가감 없이 등장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혹자는 ‘연극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표현해내기 위해서 사용되는 혐오요소들은 감안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시대를 다루지 않는 연극은 모두, 혐오의 재생산을 피할 수 없을까?

다시 그려낸 고전, <인형의 집>

‘인형의 집’은 1897년도에 극작가 헨리 입센이 쓴 희곡이다.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아이들을 홀로 잘 돌보는,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춘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나간다는 혁신적인 성장 서사를 담고 있다. 이 희곡은 2017년에 ‘인형의 집, Part 2’라는 이름으로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와 김민정 연출가를 통해 다시 만들어졌다.

-“저는 혼자서 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 곁을 떠나는 거예요”.- [인형의 집 中]

이 극은 개막하자마자 브로드웨이 최고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다. ‘인형의 집, PART 2’의 주인공은, 단순히 ‘모순을 깨달아 탈출한 인물’에서 그쳤던 원작의 여성상에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인다. 집을 나갔던 주인공이 15년 만에 돌아왔다는 서사를 추가해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 관람객 또한 주인공에게 공감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주인공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피해받는 인물’로 각색한 것이다. 이는 연극이 원작 고전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젠더감수성을 놓치지 않고 함께 표현해낸 좋은 사례이다.

그대로 표현하려면 <엘리자벳>처럼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제국 최후의 황후 엘리자베트의 비극적 죽음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극의 초반부에 엘리자베트의 시어머니가 부르는 노래 [황후는 빛나야 해]가 있다. 이 노래는, 엘리자베트가 누구보다 드높은 귀족이지만, 동시에 결국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문의 대를 잇는 도구로 기꺼이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모든 희생을 ‘빛나는 것’이라 이르며 엘리자베트가 감내해야 할 희생을 숭고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처럼 묘사한다.

-황후는 빛나야 해, 의무들 속에 희생하고 황실의 대를 이어가야만 하지- [엘리자벳 – 황후는 빛나야 해 中]

그러나, 극작가와 연출가는 이 곡의 바로 다음에 오는 노래 [나는 나만의 것]을 통해 그러한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엘리자베트는 현대의 인권 감수성에 비견하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삶에 대한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래 알아 당신들 세상에서 난 어울리지 않겠지, 하지만 이런 날 가둬두지 마, 내 주인은 바로 나야- [엘리자벳 – 나는 나만의 것 中]

정해진 역사라는 완결적 서사 안에서도, 무대를 꾸려나가는 이들의 의도에 따라 공연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또 다른 젠더 감수성, 성소수자 중심 연극

<베어 더 뮤지컬>, <헤드윅>, <킹키부츠>, <네버 더 시너>, <쓰릴 미> 등등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LGBTQ를 비롯해 다양한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해당 극들은 대부분 성소수자를 타자화하거나 희화화하지 않으며, 이성애자의 이야기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다루며 사회적 억압을 조명한다. 관람객은 ‘사회 속에서 지워진 이들’의 삶을 무대를 통해 분명히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운데 많은 공연이 초연을 넘어 재연을 올리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누더기 같은 나, 난도질 당한 나, 상처투성이 내 몸.  공포와 절망 연민에 찌들어 터지는 상처의 통곡들- [헤드윅 – 07. Exquisite Corpse 中]

-하든지 말든지 나는 나 세상 단 하나.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진 나- [헤드윅 – 04. Wig In a Box 中]

그러나 이러한 성소수자 중심의 서사를 다룬 연극들 또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성 이분법적인 세계관에서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받는다.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다양한 젠더 감수성 함양이 요구된다.

연극 공연예술이 가야 할 길

연극은 옛 시대에 끝난 완결 예술이 아니라, 매회 상연마다 제작에 참여하는 모두가 새로 만들어가는 유기적 예술이다. 회차마다 극작가와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서 내용이 새로 얹히고 재단될 수 있다. 또한 배우의 해석에 따라 대사의 강조지점이 달라지고, 애드리브가 섞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현시대에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혐오요소를 부가적인 연출과 상황적 설명 없이 그대로 상연하는 극은 충실한 고증을 위한 희생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게으른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인권과 젠더 감수성에 관한 공부가 시급하다.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통해 특정 계층만이 연극판을 주물렀던 옛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더욱 다양한 계층의 힘이 연극계에 닿고 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성비를 예시로 들자면, 2017년에 열렸던 서울 연극제에는 연출가를 비롯한 많은 인력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다소 폐쇄적인 작업 방식 탓에 위계적이고 집단적일 가능성이 높은 연극계에 여성의 진출이 늘었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이 외에도, 퀴어의 이야기만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퀴어 연극제’도 열리고 있다. 모든 작품을 매회 참여자가 직접 창작하고, 제작하고, 공연한다. 티켓 수익 전액은 다음 공연 제작을 위한 씨앗 기금으로 사용되며 현재까지 성북 마을극장에서 상연 중이다.

연극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연예술은 관람객이 일방적으로 무대를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그렇기에 늘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관람객에게 사회적 시야를 제시할 수 있는 ‘무대 위’ 라면, 젠더 감수성에 대한 불편함은 아무리 더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대학을 벗어난 사회에서도, 대중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젠더 감수성에 따라 기꺼이 불편해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글| 김지유 기자

*해당 연극 : 라이어1 – 1998년 국내 초연 이후 현재까지 쉬지 않고 계속 상연 중이다

**프로 불편러 : 매사에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위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는 사람을 이르는 말

***LGBTQ : 성소수자 ( Lesbian(여성 동성애자), Gay(남성 동성애자), Bisexual(양성애자), Transgender(성전환자), Queer(성소수자 전반) 혹은 Questioning(성 정체성에 관해 갈등하는 사람) )

[본 기사는 3월 28일에 마되었습니다]

김지유 기자
더불어 살아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 오늘처럼 힘겨운 날 혼자 있던 누군가 자기 속의 아이에게로 찾아가는구나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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