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매일 살던 대로 생각하다가, 처음 생각한 대로 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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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 김 기자의 작심 10일 계획대로 살아보기

벌써 2020년의 1/3이 지나갔다. 마음먹었던 계획들은 새해 인사만큼이나 색이 바래고 말았다. 새해 첫날 계획했던 소망을 이달까지 실천해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학교에 가지 않아 생활이 불규칙해진 지금, 열흘 동안만이라도 *다이어리에 계획한 대로 살아보려 한다.

> 먼저, 연초에 세웠던 터무니없는 계획들을 일상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고쳤다

묵혀두었던 내 새해 다짐을 다시 꺼낸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찾았다. 1월 부분은 알록달록하게 잘 꾸며져 있었으나 2, 3월 부분부터는 새것과 다름없었다. 그마저도 이전에 세워뒀던 계획을 보니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았다. 계획이행의 첫 번째 단계는 목표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창했던 목표들을 ‘매일 일정을 잘 정리하고, 일찍 일어나고, 틈틈이 책을 읽고, 운동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1일 차 : 실수

한낮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눈을 뜨자마자 내 계획이 첫날부터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알람 시간을 아침 6시로 맞춰놓았었는데, 어이없게도 잠결에 핸드폰 알람을 끈 모양인지 일어나지 못했다. 늦잠으로 인해 오전의 일정이 모두 어그러져서 르포에 담을 열흘 동안의 계획을 내일로 미뤄 시작해야만 했다.

비록 기상계획은 실패했지만, 매일 하리라 마음먹었던 운동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 ‘집에서 하기 좋은 운동’을 검색해 보았다. 많은 누리꾼이 ‘마일리 사일러스 다리운동’이라는 운동 영상을 추천했고, 나는 해당 운동을 열심히 따라 했다.

다시, 진짜 1일 차 : 나를 파악하다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내가 마일리와 달리 운동에 재능이 없었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됐다. 극심한 근육통에 개다리춤을 추듯이 다리를 떨며 스트레칭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오늘의 계획 가운데 아르바이트처럼 육체적 노고가 동반되는 일정은 없었다. 앞으로는 내 생활에 맞는 강도의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시작하는 일들은 모두 개개인의 생활방식과 몸 상태에 따라 최선의 타협 지점을 찾아내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2, 3일 차 : 버리는 시간을 모으다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매일 따로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해결책을 찾다가, 스마트폰은 힘들이지 않고도 매일 잘 본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활용해 독서를 하자’라는 규칙을 정했다. 그러고 나니 대중교통을 기다릴 때마다 자동으로 책을 펴게 되었다. 무수한 자투리 시간이 독서 시간으로 바뀌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을, ‘나의 생활에 밀접하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그래야 꾸준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고 나서는 다이어리에 간략한 독후감과 함께 어디까지 봤는지 페이지 숫자를 적어놓았다. 이렇게 하면 책을 하루 안에 다 읽지 않아도, 일정을 확인할 때마다 책의 이전 내용이 상기되어 언제든 이어서 볼 수 있었다.

4, 5일 차 : 머리를 비우고 일정표를 채우다

사나흘 다이어리를 사용하다 보니, 아침보다 하루를 정리 할 수 있는 밤에 전체적인 일정을 확인하는 게 좋다는 소소한 요령을 알게 됐다. 낮 동안 다하지 못한 업무가 있다면, 당일 밤에 한 달 일정을 살피며 전체 업무를 조정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계획대로 바지런히 사는 것이 처음인 나에게는 생활패턴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신기한 발견이었다.

거의 모든 일정을 다이어리에 쓰면서 지내는 삶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미리 고정적으로 업무를 적어놓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을 때 유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도리어 겪어보니 계획성 없이 살 때보다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해야만 했던 연극 기사 초고 쓰기에 실패했다. 그럴 때 이전에는 대개 모든 업무가 하루씩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월말에 가까워질수록 기한을 맞추기 어려운 과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날짜별, 우선순위별로 미리 정리되어 있어 밀린 업무가 있다면 그로부터 화살표를 길게 뽑아 일정이 여유로운 날 쪽으로 넘기면 쉽게 정리된다. 나는 모레의 내가 기사 초고를 대신 써줄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6, 7일 차 : 매사에 의미를 찾다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일정표에 적으며, 각각의 일정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중 ‘운동’은 ‘건강’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머리로는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어도, 실제로 매일 실천하는 것은 꽤 힘들게 느껴졌다. 이때 ‘미래의 건강에 투자한다’라는 먼 목표는 잠깐 지워두고, 눈앞의 작은 목표로 눈을 돌리는 게 도움이 됐다. ‘지금부터 3분만 더 버티면 과자를 먹을 수 있다’, 혹은 ‘다리를 더 찢으면 바로 잠을 잘 수 있다’처럼, 다소 유치하고 의미 없어 보이더라도 온라인 게임의 ‘퀘스트’ 같은 매 순간의 보상을 만들었다. 이런 보상체계 덕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멀게만 느껴지기 쉬운 운동의 의미를 좀 더 실재적이고 즉각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8, 9일 차 : 변화를 느끼다

아침에 제때 일어났으나 몸이 무거워 다시 잠이 들 뻔했다. 가벼운 운동도 안 하다가 매일 하게 돼서 그런 것일까? 요새 들어 아침 기상이 피곤했다. 일어나는 시각을 더 늦출까도 생각해봤지만, 코로나19의 여파가 가라앉으면 언젠가는 학교에 다시 아침부터 나가야 하므로 마음을 다잡았다.

재미있게도 이제는 만원 전철이나 흔들리는 버스 안과 같은, 글을 읽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책을 봐야 할까 봐 스마트폰을 잘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이 생겨서일까, 그동안 생각이 많아져서 가끔 어디엔가 적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그래서 다이어리의 여백에 그날그날의 생각을 적어보았다. 초등학생 때 그림일기조차 쓰기 귀찮아하던 내가 매일 무엇인가 적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나는 의도치 않게 다이어리를 ‘일기’라는 본뜻에 가깝게 사용하게 됐다.

10일 차: 도전 의지가 생기다

내가 구독한 운동 채널의 유튜버들은 “운동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라고 늘 입을 모아 말했다. 믿지 않았으나 겪어보니 실감했다. 비록 매일 다이어리를 쓰면서 나의 악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고작 열흘 사이에 몸은 상태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걷는 것을 예시로 들자면, 예전에는 발로 차서 나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요새는 종아리의 근육이 가볍게 밀어주는 것 같다. 헬스장에서 할 것 같은 강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었지만 속이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꾸준하게 운동을 해왔다는 생각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켜 활력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피해왔다. 앞으로는 운동도, 책을 읽을 때처럼 자투리 시간을 응용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에 끌려다니지 않게 하는 계획

1~10일 동안 얼마나 계획을 잘 실천했고. 그에 따라 삶이 이전과 비교해 어떻게 바뀌었고 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집중 조명해 보았다. 내가 원래 너무 심각한 게으름뱅이라서 변화가 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이어리 하나가 삶을 전혀 다르게 운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계획은 여유를 부르고, 정리된 여유는 그다음의 계획을 부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에 가까워질수록 계획은 삶 속으로 스며들어 점점 계획이행에 힘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획대로 살지 않을 때는 몇 없는 일정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르포 후에는 내 손으로 계획을 다루면서 비교적 여유를 찾게 됐다.

학생 없는 교정에 벚꽃이 진다. 눈 깜짝할 새 계절이 바뀌는 이 찰나 동안, 우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만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앞장만 닳아 해묵었던 다이어리를 다시 펼쳐보자. 일 년을 바꾸고, 인생 전반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에 단 며칠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낙담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심삼일도 계속하면 작심 일 년을 만든다.

글 | 김지유 기자

사진 | 류영서 기자

* 다이어리 :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날짜별로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묶어 놓은 것. 흔히, 사무용으로 이용된다. 탁상일기(卓上日記), 순화어로는 `일기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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