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확행]나의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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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실 한쪽 벽에 서 있는 책장 맨 꼭대기에는 만화책들이 죽 꽂혀 있다. 몇 권인지는 세어보지 않았다. 집에도 적지 않은 수의 만화책들이 있다. 만화잡지들이 잘 나가던 한때는 책장 한켠이 만화주간지로 꽉 찼던 적도 있었다. 누군지 기억 안 나는 학생들, 교수들이 빌려 가서 돌려받지 못한 만화들도 꽤 있다. 가끔 내 방에 오는 분들 가운데는 ‘아니 교수 방에 무슨 만화책이 이렇게 많지?’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힘주어 한마디 해 주곤 한다.

“나를 키운 8할은 만화야.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난 만화로부터 배웠다니까.”

어린 시절 만화는 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영화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했지만 최고는 만화였다. 일단 값이 쌌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보는 값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하루 종일 만화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물론 그 돈도 있는 날보다는 없는 날이 많았다. 없는 날이면 만화가게 앞을 서성거리며 문 앞에 홍보용으로 붙어 있는 만화책 표지나 포스터 따위를 열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어떤 아주머니가 씩씩거리며 찾아와 만화 보던 아이의 귓불을 잡고 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할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아이가 만화 열심히 보는 것에 대해 너그러운 부모는 많지 않았다.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만화 보는 것에 대해 관대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우리 이모가 만화 가게를 하셨으니까. 방학 때면 외가가 있던 원주로 가서 한 달 내내 눈만 뜨면 이모의 만화 가게로 달려갔다. 어린 마음에도 나 같은 공짜 손님은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맨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온갖 만화를 마음 놓고 섭렵했다. 만화 속의 멋진 그림들을 따라 그려보면서 만화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내가 한국 만화의 어지간한 계보는 죽 꿰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모두 그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어른이 되면서는 어린 시절만큼 만화를 가까이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만화를 놓지는 않았다. 석사과정에 다니던 80년대 초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신문만화를 소재로 보고서를 쓴 것이 내가 만화에 대해 쓴 첫 번째 글이 됐다. 어찌어찌 하여 모 대학 학보에 만화에 관한 글을 싣게 되고 만화비평에 입문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만화가들을 직접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어느 틈엔가 만화 가게도 거의 사라지고 주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만화를 보는 시대가 됐다. 웹툰을 보는 건 만화 가게에서 만화를 보는 경험과는 아주 다르다. 좋아하는 만화를 남보다 먼저 골라 옆에 쌓아두고 한 권씩 펼치는 재미, 만화 가게 특유의 냄새, 빨리 자리를 비워주기 바라는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의 눈길,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다른 아이가 먼저 보고 있을 때의 아쉬움 같은 게 거기엔 없다. 그저 스크린에 펼쳐지는 만화를 스크롤 바를 내려가며 보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행위만 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는 디지털 이미지는 너무나 휘발성이 강해 뇌리 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페이지를 넘길 때 느껴지는 물성, 그 촉감이 주는 애틋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연재되는 걸 때맞춰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꼭 보고 싶은 만화는 웹상에서 연재가 끝난 뒤 한꺼번에 몰아보고, 재미있다 싶으면 출판된 책을 사서 다시 본다. 그러다 보니 연구실에 만화책이 점점 늘어난다.

최근에 아이패드가 생겼다. 요즘은 아이패드에 직접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일 잠깐이라도 연습해보려 한다. 아직은 이것저것 그려보면서 드로잉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단계지만 언젠가는 내 방식으로 만화 한 편을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어쩌면 50여 년 전의 꿈을 이루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어떤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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