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믿어지는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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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발의 반대를 시작으로 홍콩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홍콩경찰의 무력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지난 18일,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던 홍콩 이공대에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들고 진입했다. 학생들은 유서를 쓰고 저항했지만 수백 명이 연행됐다. 현재 홍콩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달 24일, 홍콩 시위 현장을 마주한 두 학우가 글을 보내왔다.

믿어지는가

고예규 (사과 4)

홍콩의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10월 24일 새벽, 도착한 홍콩의 밤거리는 잠시 소강이 된 듯, 네온사인은 여행지 광고 사진에서 본 것처럼 화려했다. 다만 신호등 몇 개는 깨져 있었으며, 밤새 켜지지 않았다. 횡단보도에는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사람들과 함께 ‘Revolution of our tim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음날 학우 두 명과 함께 홍콩의 의료인들이 주최하는 좌담형식의 집회를 참여했다. 5일 전의 집회에서 무장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기 위해 병원에 진입한 사건과 폭력집회를 규탄하기 위한 자리였다. 어린아이와 청소년, 노부부 등 다양한 세대가 참석한 집회였다. 집회 신고가 허용된 경우였기에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운집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시위가 시작된 지 5개월이 가까워졌고, 사람들은 많이 지쳐있었다. 집회가 열리는 공원들을 둘러싼 마천루의 뒤편에는 다시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추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시위대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찰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면 도로변에 있던 사람들은 욕(Fuck off Popo!)과 소리를 질렀으며, 지나가는 이층버스 위 맥주병을 들고 있는 몇몇 백인들은 ‘Free Hongkong’을 외쳤다. 친애하던 경찰들이 폭력진압을 하면서부터 시민들의 불신은 커지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 대답해야 할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는 거리에, 그리고 회의 테이블에 나타나지 않고 유령처럼 아시아 최대의 금융도시를 떠돌았다. 그리고 곧 국지적인 경찰과 시위대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27일, 침사추이(Tsim Sha Tsui: TST, 尖沙咀/ 尖沙嘴) 일대에는 무장경찰과 살수차가 등장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각국의 취재진은 시위대 사이사이에 서서, 다가오는 경찰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고,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살수차는 파란색 물대포(최루가스)를 시위대를 향해 직접 쏘기 시작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곤봉을 든 경찰들의 전진했다. 온몸을 무장한 경찰들, 사람들은 도망치고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시위 인원들은 날짜와 시간을 외치기 시작했다. -00일 빅토리아 파크- 취재진들은 자리를 잡고 사진과 기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홍콩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고, 현재 홍콩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홍콩당국은 경찰, 특공대, 언더커버를 이용해 더욱 강경 진압을 하고 실탄 사격, 취재진 폭행 등을 자행하고 있다. 한 대학생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민주주의와 주권, 형식적 절차의 안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테러리스트’라는 말로 왜곡되며,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그의 얼굴과 함께 퍼져나갔다. 동시에 몇몇 중국인들은 홍콩인과 홍콩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시사했다. 명백한 사실은 그곳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홍콩에 살고 살아온 홍콩의 시민들이며, 그들은 몸으로 그들의 정부와 중국의 강권력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밤(18일), 홍콩-이공대학을 지키는 시위대와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장경찰의 모습이 ‘마지막 항쟁’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으로 인터넷을 떠돌았다. 믿어지는가.

그림자가 없기만 하다

백월 (사과 3)

0.

 2019년 10월 24일 목요일부터 2019년 10월 28일 월요일까지, 동년도 6월 9일 이후 5가지를 요구하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홍콩에 갔다 왔다.

5. 10월 28일, 월요일

 오후에 있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학교와 회사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지하철은 만석이 되었다. 내 옆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아주머니가 앉았다. 아이는 무표정의 큰 사람들이 무서운 건지, 단지 심심한 건지 몸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앞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다 금방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버렸다. 앞에도 옆에도. 함성, 파괴, 정의, 열정… 그러한 것들의 홍콩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핸드폰 불빛이 반짝이는 회색빛 시계 속에 몸을 뉘었다.

3.2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Fight for Hongkong.”, “Fight for freedom.” 홍콩의 중심도시 센트럴 금융지구에 있는 차터가든에서 열린, 정부 승인하에 이루어진 시위에서 외쳐진 구호들이다. 참가자 한 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에 반대한다. 우리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 그곳에는 미국의 성조기가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함께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둘러싼 백화점과 은행 건물이 높기만 했다.

3.1 10월 26일, 토요일, 오전

 센트럴 금융지구에 도착한 우리는 차터가든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헐리우드 거리에 있는 곳에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로 가는 길, 펍(pub)이 많았고, 펍에는 백인들이 담배를 태우고 맥주를 마시며 미식축구를 보고 있었다. 숙소의 주인은 독일 남성이었는데 친절하게 집을 안내해주었다.

 숙소를 나와 시위장소로 가는 길은 아래를 향해 있었다. 백인들의 웃음소리와 점수가 올라갈 때마다 울려 퍼지는 환호성을 뒤로하고, 가파르고 길게 드리워진 계단으로 내려만 갔다. 정의감보다는 역겨움이었다.

1. 2019년 10월 24일 목요일, 오후

 ‘싸움을 보고 싶다. 그곳에는 어떤 뜨거움과 정의가 있을 것인가.’ 기대가 들었다. 그리고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눈을 감았다.

0.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자유를 위해 싸우자!”, “한국을 위해 싸우자!”…

 때로는 맛있는 걸 먹었고, 때로는 좋은 음악을 들었고, 때로는 공부를 했고, 때로는 옷을 샀고. 때로는 친구를 만났고, 때로는 키스를 했다. 그리고 회색빛 시계는 돌아만 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태양 밑에 나는 웃음도 눈물도 없기만 하다. 그렇게 태양에 비치는 그림자는 없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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