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위기의 시대를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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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편집국장

성공회대학보가 34주년을 맞이했다. 우리의 생애주기로 보면 서른네 살이다. 청년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나이다. 대학언론의 ‘존재’와 ‘위기’가 동의어가 되어버린 2019년의 성공회대학보는 인생의 안정기라기보단 분투의 한복판에 있다. 대학공동체에서 학보의 존재감은 자칫 미미해 보인다. “아, 학보사가 있어?” 미디어센터 기자들이 이따금 마주하는 반응이다. 뒤이어 방송국과 미디어센터의 존재를 묻기도 한다. 요즘은 궁금한 게 생기면 구글도 아니고 유튜브에 검색한다는데. 학교 소식은 페이스북과 에브리타임에 차고 넘치는데. 글이 빼곡한 학보, 주간도 아니고 월간인 학보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300호를 넘어 400호, 500호를 기념하자고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학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먼지 쌓인 2000년 초 학보를 뒤지던 김지유 기자가 기사 하나를 들고 왔다. ‘대학언론 위기’라는 제목이 붙은 20년 전 기사였다. “그때도 학보를 안 봤나 봐요.” 한숨보다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우리가 말하는 ‘정상적인’ 학보의 역할은 무엇일까, 위기의 반대편은 존재하긴 했을까? 우리가 꿈꾸는 정상이 허상은 아니었나. 늘 대학언론은 치열하게 분투했고, 그저 지금도 계속 분투할 뿐이다. 성공회대는 계속 변한다. 학보도 함께 변하고 있다. 

결국 ‘당신을 위해 쓴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쓴다. 그리고 ‘읽지 않는 이들을 위해 쓴다’고 덧붙인다. 단순히 ‘읽을거리’가 아니라 관찰자, 기록자, 질문자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기자들에게 “쓰고 싶은 기사를 쓰자”고 자주 말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기사가, 대학구성원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만큼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여느 때보다도 ‘위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위기라고 비관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대학언론을 말하면서 위기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고, 왜 위기인지 묻는다면 학생사회를 진단해야 했다. 특별기획이라는 이름을 달고 넉넉하게 나왔으니 읽는 이들의 마음도 채워졌으면 좋겠다. 학내에 머물렀던 시선을 다른 대학으로도 넓게 돌렸다. 기존 보도도 놓치지 않았다. 기숙사 화재경보 문제, 학생 식당의 수요 문제를 담았다. 늘 그렇듯 문화면도 알차다.

300호와 함께 2019학년도를 마무리한다. 학보의 끝은 아니다. 류영서 기자의 사진기획이 2020년을 반기듯, 301호도 여러분과 만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살폈으니 또 앞으로 가야 할 때다. 성공회대학보가 대학공동체에,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필요했으면 좋겠다. 기자들은 오늘도 뛴다. 질문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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